다시는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지 않기로 했다. 일년동안 방치해둔 카메라를 고치기로 했다. 머리에서 커피향이 묻어난다. 꾹꾹 눌러서 짜내면 나도 황금빛 크레마가 나오려나.

3월의 눈 내리는 밤

from text/essay 2010.05.11 07:54

 3월인데 눈이 왔었다. 3월 9일. 달력은 분명한 3월이건만 종로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우리는 눈길을 걸었다. 우산 위로 쌓이던 눈의 소리는 김광균의 설야(雪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김광균이 겪었던 밤의 눈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였지만 우리가 겪었던 눈은 어떠했던가. 우산 위로 무섭게 쌓이던 눈의 무게와 그 소리. 모든 소음을 잡아먹고는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던 눈의 소리에 우리는 새삼 막걸리 때문에 붉어진 볼을 붙잡고 입을 다물었다.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는구나, 지하철역에 다다랐을 때 친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동방규(東方虯)의 소군원(昭君怨)중 마지막 구절을 읊어댔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이 피지 않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를 않는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허리띠 자연히 느슨해져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몸매를 위한 것은 아닐지 어니.

 우리는 함께 3호선을 탔다. 3월인데 다들 코트와 패딩을 입고 있었다. 다들 어깨에 한주먹씩 눈이 쌓여 있었다. 저마다 어깨에 쌓여 있는 그것은 하얗고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막걸리의 취기 때문인지 갑작스러운 추위 때문인지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조는 친구의 볼만 유독 빠알갛게 물들어 있었다. 친구의 어깨에는 눈이 녹아 코트의 어깨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3월의 폭설 때문일까, 다들 물먹은 솜 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그칠 기미가 없이 쌓여만 가는 눈을 바라보며 우리는 김치전을 찢고, 먹고, 찢고 먹으며 막걸리를 비워갔다.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청춘의 두려움과 가까워져 오는 어른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왜 그렇게 말이 없었을까. 왁자지껄한 술집과 쌓여가는 눈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그저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하고 막걸리를 비워갔을 뿐이다.
 3월인데 눈이 오던 그날, 우리는 새삼스레 이제는 대학교 1학년의 우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휴학한 나는 내년에 3학년이 되지만, 친구는 올해로 졸업반이다. 열아홉, 스물의 우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스물둘, 스물셋의 우리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현재 속에서만 살고 있을 것이다. 열아홉, 스물에 겪었던 처음 먹은 맥주의 맛이라거나 밤의 경주 안압지 산책은 영영 과거로만 존재할 것이다. 그것도 언젠가는 실재했던 사실인지도 어렴풋해질 정도로. 그날 우리는 이 청춘이 언젠간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조심스러워졌을 것이다. 언젠간 잊혀 질 기억들이기에, 새삼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청춘에 대해.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때의 궁녀이다. 원제의 궁에는 후궁이 너무 많아 모연수(毛延壽)라는 궁중화가에게 후궁의 그림을 그리게 하여 그 그림 중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하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후궁들은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며 그림을 잘 그려달라고 간청하였는데,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아 모연수는 그녀를 추녀로 그렸다고 한다. 당연히 원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흉노족의 왕 호한야(胡韓耶)에게 한(漢)나라의 후궁 중 한 명을 보내기로 하자 원제는 모연수의 그림 중 가장 추녀인 왕소군을 보내기로 한다. 왕소군을 보내는 날, 원제는 처음으로 왕소군의 얼굴을 보고는 격노하여 모연수를 죽인다. 말도 통하지 않는 흉노족에게 시집을 가는 길에 왕소군은 서글픈 심정을 연주하였는데, 구슬픈 그 소리와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갯짓 하는 것을 잊고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비롯된 말이 낙안(落雁)이다. 훗날 당나라의 시인인 동방규(東方虯)가 왕소군을 기리는 한시를 지은 것이 소군원(昭君怨)이다.
 동대입구역에서 내린 우리는 여전히 말없이 하숙집을 향해 걸었다. 하숙집에서 방문을 여는데, 친구가 말했다. 남자친구와 오늘 헤어졌다고. 친구는 헤어진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온종일 말이 없었던 것이다. 방에 누운 친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지.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떠올랐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친구는 변한 사람, 혹은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곧 변할 우리의 청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청춘이든 사랑이든 변하는 것은 없다. 3월이라고 눈이 오지 않으라는 법 또한 없다. 그 눈이 오는 소리 또한 누군가에게는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청춘에 대한 경고 사이렌으로 들렸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개봉한 <봄날은 간다>를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물둘, 스물셋이 된 지금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절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대나무는 변하지 않고 사철 푸른데, 영화 속 은수와 상우의 사랑은 변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중얼거려봤자 변한 사랑을 어찌할 수 없다. 변하니까 사랑이고, 변하니까 사람이다.
 실연의 아픔에 우는 친구의 등을 다독이며 하숙집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밤하늘 속에서 흩날리는 눈발이 가로등불빛에 비쳤다. 세월이 지나서 나의 20대가 몇 편의 단편적인 기억으로밖에 남을 수 없다면, 꼭 2010년 3월의 눈 내리는 오늘 밤만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故김광석이 말하던,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는,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재밌거나 신기하지도 못하는, 그런 나이인 서른 즈음에. 그때 3월에 눈 내리던 그날 밤을 떠올렸으면. 왕소군은 결국 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아니, 꽃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봄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을까.

 

from photo/ocean 2010.05.0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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